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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문예 사조의 등장

또 다른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 안톤 체홉

by spiritual-journey 2025. 1. 30.

안톤 체홉(1860~1904)

 

러시아의 안톤 체홉(Anton Chekhov)도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이다. 체홉에 대해 스타이언은 자연주의의 재정의를 요구할 만한 정도의 업적을 남겼으며, 입센의 외관을 구식으로 만들었다”(his achievement was of such a stature as called for a redefinition of naturalism, and made Ibsen’s look old-fashioned, 81)고 평가하면서 “‘작가는 화학자만큼 객관적이어야 한다’(1887114)는 체홉의 유명한 주장은 그가 자신의 사실주의에 있어서 입센이나 스트린드베리를 능가하는 이유를 요약할 수 있을 것”(The well-known assertion by Chekhov that ‘a writer should be as objective as a chemist’(14 January 1887) could sum up the reasons why he goes beyond Ibsen and Strindberg in his realism, 83)이라고 언급한다.

 

우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용어에 대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도 살펴보자. 

 

J. L. 스타이언(J. L. Styan)의 『근대극의 이론과 실제 1』(Modern Drama in Theory and Practice 1)의 부제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Realism and Naturalism)이다. 통상 자연주의에 대해 사실주의를 모태로 하여 발생한 문예사조로 정의하는 것처럼, 이 두 용어는 근접한 스펙트럼 내의 범주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스타이언도 저자 서문에서 “실제로는, 적나라하게 사실주의적인 작품이나 순수하게 상징주의적인 작품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In practice, it is impossible to find a play of, say, naked realism or pure symbolism, xii)고 언급하며, “입센은 사실주의자이자 상징주의자이며, 스트린드베리는 자연주의와 표현주의를 동시에 포용한다”(Ibsen is a realist and a symbolist, Strindberg embraces both naturalism and expressionism, xii)고 말한다.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도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는 비평 용어의 한 쌍이라고 언급하며, “사실주의는 비평가들에 의한 설명적인 용어이고, 자연주의는 한 학파의 프로그램상의 슬로건이었다”(Realism is a descriptive term coined by critics, naturalism was the programmatic slogan of a school, 60)고 말하면서,

 

사실주의가 성취되어야 할 사회를 보여 주며 현세에 통찰을 던지는 데 역점을 두는 경향에 대한 용어라면, 자연주의는 마치 자연 과학자가 자연에 접근할 때 객관적인 탐구 정신으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처럼 사회의 진실에 대해 더럽든 추잡하든 인간 전체의 경험을 누락 없이 포착하려는 경향에 대한 용어라고 설명한다(Esslin 60-61).

 

 

체홉이 작품에서 습관적으로 고도로 개별화된 일군의 가족 전체를 다뤘다고 지적하는 스타이언은, 그래서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일은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상호 관계를 숙고하는 경험, 즉 인물과 상황의 전후 관계를 통해서 왜 어떤 말과 행동이 행해지는가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파악해야 하는 경험이 된다”(Watching a play of his becomes an exercise in observing interactions and speculating upon interrelationships, constantly having to explain from the context of character and situation why something is said and done, 88)고 설명한다.

 

전례 없던 이러한 관람 경험은 과거 극 진행의 전통적인 통제와 연이어 전개되는 긴박감에 익숙했던 수동적 관객들을 당황케 했지만, 체홉이 그려낸 등장인물 간의 다양하고 미묘한 상호적 관계는 작품 내에서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표상이 되며 무한한 복합성을 작품 속에 그려내는 기능을 하였다.

 

체홉의 『벚꽃 동산』

 

 

체홉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에서 기울어져 가는 귀족 계급과 신흥 자본주의 상인 계층의 대비되는 모습을 깊이 있게 보여주며, 파멸해 가는 구세계의 모습을 침착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에 대해 스타이언은 어떠한 악역도, 영웅도, 도덕도 없지만, 전체 사회 계급의 분열, 그리고 구질서의 해체와 관련되어 잠재적으로 거대하게 폭발할 듯한 상황에 대한 차분하고 유쾌한 표현만이 있다”(There is no villain, no hero, no moral, just a calm and amused treatment of a potentially enormous and explosive situation, that of the breaking up of the old order and the disintegration of a whole class of society, 84)고 언급하며, 체홉의 잔잔한 서술 이면에 은닉된 심오한 사실주의적 특징에 대해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