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프레드릭 I. 카펜터(Frederic I. Carpenter)에 따르면 “당시에는 최고의 의사들조차 습관성 약품의 위험성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했다”(At that time even the best doctors were not fully aware of the habit-forming dangers of the drug, Eugene O’Neill 21).
중독 전문 의사인 칼 에릭 피셔(Carl Erik Fisher)는 『중독의 역사』(The Urge: Our History of Addiction)에서 19세기에는 “아스피린이나 기타 괜찮은 진통제가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믿을 만한 강력한 통증 완화제는 의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This was decades before aspirin or any other decent pain relief was available, so a reliable, dependable, and powerful therapy for pain was a meaningful boon for the medical profession, 110)고 언급하며, “단연 중요했던 것은 모르핀”(by far the most significant was morphine, 110)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시기에 “피부밑 주사기”(the hypodermic syringe, 110)가 개발되어 “정확한 분량의 약물을 신체 안에 주입할 수 있게”(that could deliver precise doses of medication directly into the body, 110) 되었고, “새로운 투여 방식은 본질적으로 모르핀을 빠르게 듣도록 더욱 효과적인 형태”(the new delivery system essentially transmuted morphine into a new, more potent, and faster-acting form, 110-11)로 바꿔놓았지만, “유해한 사용의 유행을 촉발하는 중요한 요인”(a significant factor in sparking an epidemic of harmful use, 111))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피셔는 “피부밑 주사로 인해 서서히 심해진 모르핀 문제가 결국 터졌다”(The hypodermic turned the slow burn of morphine problems into a raging fire, 111)고 언급하며,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파리의 병원들을 보면, 모르핀 처방은 1855년부터 1875년까지 연간 272그램에서 1만 그램 이상으로 36배 넘게 증가”(In Parisian hospitals, where some of the better records were kept, morphine prescriptions increased by more than thirty-six-fold from 1855 to 1875, from 272 to well over 10,000 grams yearly, 111)했고,
“미국에서는 어느 역사가의 추산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중독을 보이는 사람의 숫자가 1842년부터 1890년대까지 6배 늘었다”(In the United States, according to one historian’s estimate, the number of people with opioid addiction increased sixfold from 1842 to the 1890s, 111)고 지적(피셔에 따르면, 오피오이드(opioid)와 아편제(opiate)는 두 용어가 이따금 서로 바꿔 쓰이기도 하는 등 때때로 혼용되어 언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아편제는 모르핀처럼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합성물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고, 오피오이드는 옥시코돈(oxycodone) 같은 모든 합성 약품을 포함한다(109))하며,
위험성을 간파한 몇몇 의사들은 중독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지만, “과학 기술을 낙관한 의사들”(doctors themselves, seized by technological optimism, 112)은 위험성에 대한 이해에 더딘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모르핀 주사는 완전히 안전하며 경구 투여만 습관성의 위험이 있다고 믿었다”(still believed [...] that injected morphine was entirely safe and that only oral morphine was habit-forming, 112)고 상술하였다.
피셔는 오늘날 이렇게 치료의 일환으로 중독되는 유형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로 "의원성(醫原性) 중독"이 있다고 언급하며, "의원성"은 의학적 치료에 원인이 있다는 뜻으로, 의학적 과잉 처방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로저 코브(William Rosser Cobbe)는 1895년 발표한 『닥터 주더스』(Doctor Judas)에서 "아편 강심제"부터 성인의 모르핀 처방에 이르기까지 아편을 허술하게 사용한 의학적 부주의가 어떻게 자신을 9년간 아편의 노예로 만들었는지 설명했고,
신경과 전문의인 조지 밀러 비어드(George Miller Beard)는 "신경 쇠약"이라는 "미국병"의 이론을 개진했는데, 이것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 원인이 있는 질환으로, 정보의 홍수, 실내 생활의 혼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경쟁적인 노동, 발전해야 한다는 압박이 미국인의 두뇌에 지나친 부담을 주었고, 이것이 중독의 근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피셔는 당시 몇몇 읍에서는 중독자의 80퍼센트가 여성이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의사들이 여성의 증상을 아편 등의 완화제를 사용해 공격적으로 치료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1883년 저명한 미국 의사 J. B. 매티슨(J. B. Mattison)이 습관적인 모르핀 사용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대다수가 의사라고 했으며, 다른 평자는 심지어 의사가 그러한 "상습자"의 90퍼센트까지 차지한다고 주장했다고 언급하였다(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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