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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본원적 기반, 가족/소중한 일상에서 유래될 수 있는 얽힘

트라우마에 대한 재인식과 일상적 차원의 트라우마

by spiritual-journey 2025. 1. 22.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

 

 

주디스 허먼이 비교적 현대에 들어선 시기인 20세기 후반에 개인적 차원의 트라우마에 대해 역설한 것과 같이,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을 세부적으로 확장하여 압도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치명적이지는 않은 듯한 일상의 상처도 삶을 압도하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음을 포착하고 천착한 연구자로는 심리학자 멕 애럴(Meg Arroll)과 정신과 의사 폴 콘티(Paul Conti)도 있다.

 

 

멕 애럴의 『스몰 트라우마』

 

 

영국심리학회의 공인 심리학자이자 과학자인 애럴은 빅 트라우마”(Big T trauma)스몰 트라우마”(Tiny T trauma)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일반적 의미의 트라우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의미인 빅 트라우마에 대해 전쟁의 경험과 어린 시절의 학대, 범죄 피해, 자연재해의 피해 등이 이에 속한다고 언급한다(8).

 

그녀는 이스트런던대학교(University of East London) 만성질환 연구팀에서 신체 질병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Physical Illnesses)에 대해 깊이 살피며 모든 종류의 질병과 이러한 질병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던 중에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이 설명하는 빅 트라우마로는 설명이 어려운 맹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10).

 

스몰 트라우마에 대한 여타 논문과 임상보고서 등 각종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며 연구를 지속하던 애럴은 과민성 대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IBS) 환자의 빅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를 분석한 2004년의 한 논문을 발견한다. 스몰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아직 많이 회자되지 않았던 때인 만큼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 초래 비율이 더 높다는 결론을 예상하며 읽던 그녀는 놀라운 결론을 보고 유레카의 순간을 경험한다.

 

 

IBS를 유발하는 것은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이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배웠던 빅 트라우마나 주요 생애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사소한 트라우마였다. 차갑고 냉담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학대나 방치를 경험한 이들보다 대장이 과민할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너무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 같았다. 스몰 트라우마는 실제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 환자들에게는 심지어 빅 트라우마보다도 훨씬 더 중요했다! (25)

 

it was minor traumas that seemed to predict IBS symptoms rather than the Big T or life events that psychologists are taught lead to ill health. People whose parents had been cold or aloof were more likely to have this tummy condition than those who had experienced full-on abuse or neglect. I found this fascinating – you know those moments when fireworks ignite in your mind? Not only were Tiny Ts important ... THEY WERE MORE IMPORTANT IN THESE PATIENTS THAN BIG T TRAUMA! (11)

 

 

스몰 트라우마라는 용어에 대해 애럴은 심리학자 프랜신 샤피로(Francine Shapiro)의 연구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 Reprocessing, EMDR)의 창시자인 샤피로는 트라우마의 개념을 정서적 방치나 무관심, 가족 관계처럼 일반적으로 드물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경험까지 확대했고, 연구와 임상 경험을 통해 이러한 작은 상심과 위협들이 장기적으로는 정서적·신체적인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Arroll 10-11).

 

샤피로의 스몰 트라우마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연구를 진척시킨 애럴도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작고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고갈시키는 것 역시 작고 일상적인 일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2).

 

그녀는 부모와 자녀 간의 정서적 조율 실패”(parent-child misattunement)성취 문화”(achievement culture), “끊임없는 경제적 고민”(constantly trying to make financial ends meet) 등의 일상적이고도 미묘한 경험들이 점차 쌓이며 침체된 정신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2).

 

스몰 트라우마는 세상 사람들에게 매우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상적이면서도 경미한 수준의 트라우마가 장기적으로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애럴은 설명한다(2-3). “스몰 트라우마와 같은 일상적 개념의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해 유의하지 않고 지내게 될 경우 시간이 지났을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빅 트라우마와 비견되게 또는 더 결정적으로 중대한 피해를 초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럴은 이러한 일상적인 스몰 트라우마가 점차 쌓이면서 집적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여러 정신적·신체적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