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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문예 사조의 등장/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다시 중독의 상태로 회귀하는 메리

by spiritual-journey 2025. 2. 13.

평론가 티모 티우사넨(Timo Tiusanen)은 메리의 싸움은 패배했다”(The battle is lost)고 언급하며 이어지는 막들에서 메리는 깊고 더 깊게 모르핀 중독의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한다고 지적한다(“Through the Fog into the Monologue.” Eugene O’Neill’s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d. Bloom, Harold. 40).

 

티우사넨의 지적처럼 메리는 점심 무렵부터 모르핀 재투약의 상태로 접어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도 오랜만이라 적당한 양이 가늠이 안 된다”(you never know exactly how much you need, 109)고 하며 거듭 투약하려 하는 등 깊은 중독의 상태로 점차 침잠한다.

 

Playbill 포스터_American Airlines Theatre_227 West 42nd Street_New York

 

 

메리는 작품 전체를 통해 과거 회귀만을 극단적으로 소망하는 고착된 사고 방식을 일관적으로 보이며 “행복했던 과거만이 진짜”(Only the past when you were happy is real, 107)라고 이야기한다. 메리는 자신의 말이 마치 행복을 불러내는 주술인 양”(as if her words had been an evocation which called back happiness, 107) 잠시 멈추고, 표층을 한 겹 벗은 듯 심층으로 들어간다. 메리는 소녀 시절 희망찼던 기억과 아버지의 사랑에 관하여 하녀 캐슬린에게 이야기한다.

 

 

메리 [...] 우리 아버지는 특별 수업을 받도록 해주셨어. 나를 응석받이로 만들었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셨거든. 수녀원 학교를 졸업하면 유럽으로 유학도 보내 주려고 하셨지. 만약 타이런 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갔을 거야. 아니면 수녀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나에겐 두 가지 꿈이 있었어. 수녀가 되는 게 더 큰 꿈이었지. 피아니스트가 되어 콘서트를 여는 것이 또 다른 꿈이었고. (124)

 

MARY

[...] My father paid for special lessons. He spoiled me. He would do anything I asked. He would have sent me to Europe to study after I graduated from the Convent. I might have goneif I hadn’t fallen in love with Mr. Tyrone. Or I might have become a nun. I had two dreams. To be a nun, that was the more beautiful one. To become a concert pianist, that was the other. (106)

 

 

메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충족시켜 줬던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과 수녀원생이던 소녀 시절에 대한 추억, 그리고 그 시절 소중히 간직하던 수녀와 피아니스트라는 장래 희망에 대한 행복하고 찬란했던 기억은 메리에게 가혹한 현실을 더욱 직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질곡이 되었다.

 

평론가 버지니아 플로이드는 등장인물들의 양면성에 대해 죄 없는 순수한 피해자와 죄의식 있는 가해자 사이의 갈등”(the innocent victim versus the guilty victimizer, 541)으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적 고찰은 가족 관계의 역학을 살펴볼 때 매우 유효한 시선이다. 가족 관계에 있어 공유되는 접점이 많거나 감정적으로 서로 분리되기 힘들 정도로 서로 간에 매몰의 정도가 깊다면 양극단의 정서 상태를 무한 반복하게 되는 질곡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