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가 가족 심리극의 성격이 강한 만큼 선행 연구들도 대체로 가족의 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한 역학 관계에 역점을 두어 논의를 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선행 연구들은 고찰의 주요한 방향에 따라 가족 갈등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페미니즘과 자본주의와도 접점을 비추어 살피며 연구의 다양한 노선과 분석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대한 비평에서 초반에 논란이 두드러졌던 부분은 여성 등장인물 메리에 대한 해석이다. 메리는 적지 않은 비평가로부터 부정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상이 아니라는 모습 때문이었다.
도리스 V. 포크(Doris V. Falk)는 1958년 펴낸 그녀의 평론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는 고통의 서사를 일관되게 사실적으로 끌어가는 전개가 사실주의 작품으로서의 힘 있는 역량을 보여준다고 평하였는데, 그녀는 등장인물에 관한 분석을 하며 메리에 대해서는 “환상으로의 도피일지라도 소녀 시절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영원한 소녀 같은 여성”(She is the “eternal girl-woman,” the wife and mother who longs to return (as in Long Day’s Journey she does, in her drug fantasies) to the innocence of childhood and virginity, 11)이며, “아들들이 소망하는 ‘대지의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Mary is also the inverse image of the Earth Mother for whom her sons long, 11-12)이라고 분석하였다(Falk , “Long Day’s Journey.” Eugene O’Neill’s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d. Bloom, Harold).
그리고 에길 톤퀴비스트(Egil Törnqvist)는 1969년 펴낸 『밤으로의 긴 여로』에 대한 평론에서, 오닐이 작품활동을 통해 표현하려고 천착했던 지점은 단순히 사람들의 표면적인 삶에 대한 묘사가 아니고, 그들 내부에서 작용하는 어떤 힘에 대한 부분이었다고 말하며, 등장인물들에 대해 내면의 상반된 욕망에 대한 분투 등을 살펴봄으로써 다른 등장인물과의 유사/상반되는 면을 연결 지어 볼 수 있는 "더블"(double)과 같은 지점인 “등장인물 평행이론”(parallel characters, 52)에 대해 이야기한다.
톤퀴비스트는 “예를 들어, 메리와 뚱뚱한 바이올렛(Violet)에 대해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상당한 지점들이 있다”(There is, for example, the somewhat surprising resemblance between Mary and Fat Violet, 53)고 말하며, 우선 명백하게 대조적인 부분에 대해 짚어본다. 그는 “바이올렛은 모든 남자들의 여자인 매춘부이고, 메리는 이름의 상징성과 소녀 시절 수녀가 꿈이었던 부분에 의미를 둬봤을 때 어떤 남자의 여자도 아닌 성녀”(Violet and Mary, the whore and the “virgin,” the woman of all men and the woman of no man (for this is what Mary’s name and dream of becoming a nun amount to), 53)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톤퀴비스트는 여러 유사한 지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는데, 짚어볼 만한 한 문장을 살펴본다면, “바리올렛은 뚱뚱함이라는 결함, 그리고 메리는 부인으로서와 엄마로서의 결함이 있으면서도, 둘 다 그들의 추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기를 소망한다”(Both hope to be loved despite their deformities, Violet despite her fatness, Mary despite her deficiencies as a wife and mother, 53)라는 언급이다( Törnqvist , “Life in Terms of Lives.” Eugene O’Neill’s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d. Bloom, Harold).
또한 이후의 평론 중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메리와 관련된 부정적인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밤으로의 긴 여로』의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했던 플로이드는 메리에 대해 “오닐의 가장 복잡한 등장인물이며, 그간 그가 작품에서 창조했던 어떤 어머니보다도 가장 복잡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Mary Tyrone is O’Neill’s most complex character, the full-blown apotheosis of all the mothers he ever created, 534)이라고 말한다.
플로이드는 메리가 원가족에서 아버지의 관대함으로 경험한 유복했던 소녀 시절로 인해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등 “버릇없이 자랐을 뿐만 아니라, 도도한 인물이 되었다”(He not only spoiled her, he made her a snob, 541)고 언급하며, “메리는 스스로를 단속하지 않는”(Mary will not help herself, 542), “이기적이고 사납고 복수심 가득하고 무책임한 인물”(She is selfish, vindictive, vengeful, and irresponsible, 542)이라고 지적한다(Floyd, The Plays of Eugene O’Neill: A New Assessment).
하지만 점차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또 다른 관점으로 다시 읽어내 보려는 시도가 이어지며, 앞서 살펴봤던 선행 연구들과는 다르게 메리 입장의 특수성과 어려움에 주목하여 분석해 보려는 연구들이 등장한다.
비평가 데이비드 맥도널드(David McDonald)는 「『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타난 곁눈질의 현상학」(“The Phenomenology of the Glance in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이라는 논문에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현상학적 존재론을 끌어와 타이런 가족 내에서의 “관찰자-관찰당하는 자”(watchers-being-watched, 343) 구도에 주안점을 두어 등장인물들을 분석한다.
그는 “1막의 상황은 ‘메리 관찰’로 묘사될 수 있을 것”(The dramatic situation of the first act may be described as “watching Mary”, 345)이라 언급하며, “그녀의 존재는 그들을 사로잡거나 괴롭히고, 그들은 그녀의 눈빛을 통해 그들의 운명을 전망한다”(Her presence possesses or haunts them, and they estimate their own fate by the look in her eyes, 345)고 지적한다.
또한 맥도널드는 “『밤으로의 긴 여로』의 제1막의 관심사와 궁극적인 극 전체의 관심사는 메리의 부재와 존재이다”(The central concern of the first act of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and, ultimately, the concern of the entire play is the absence-presence of Mary Tyrone, 345)라고 말하며, 상호 간의 관찰과 관찰당함이 교차하며 시선의 감옥에 갇힌 등장인물들의 상호 관계에 대해 분석한다( McDonald , “The Phenomenology of the Glance in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Theatre Journal).
그리고 트래비스 보가드(Travis Bogard)는 「문과 거울」(“The Door and the Mirror”)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를 단순히 “가정 비극”(domestic tragedy, 65)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이 작품의 정서적·감정적 면모를 과소평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오닐이 때때로 표현했다는 “‘삶의 이면’의 끊임없는 움직임”(unremitting movement “behind life”, 65)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면, 고통의 본질에 대한 내포의 측면에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고통의 꿈이 된다”(Life becomes a dream of pain, 66)고 지적한다.
보가드는 메리에게 처녀 시절의 사랑은 그녀가 몰랐던 곳, 그녀가 전혀 준비될 수 없었던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고 언급하며, 오닐이 메리가 소녀 시절로의 환상으로라도 현실과 가족을 탈출하고픈 욕구를 명백히 그려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타이런 남성들의 메리에 대한 의존이 단지 그녀의 건강에 대한 표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하며, “메리는 외로움을 싫어하면서도, 남편과 아들들의 사랑에 대한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고, 도피할 곳을 찾아 그들로부터 돌아설 수 있기를 바란다”(Mary needs to turn from them all, to find a path that will take her deep into the fog, hating the loneliness, yet wanting to be rid of the obligations the men’s love place upon her, 67)고 지적한다( Bogard , “The Door and the Mirror.” Eugene O’Neill’s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d. Bloom, Har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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